쏘는 것과 더치 페이
나는 2002년 겨울철에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몇 해 전부터 알고 지내는 MR. UKHIN이라는 친구집에서 3박4일을 보낼 기회가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낯설은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주간엔 업무에 바쁘지만 대개 밤이 되면 할 일이 없어 네모난 숙소 안에서 TV와 함께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어 많이 고민을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만은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을 안 보내도 되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내마음을 읽었는지 밖에 나가서 구경삼아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다. 나는 3년전인가 그 친구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흡족한 맘이 들도록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접대를 해 주었는데 그걸 잃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기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내가 잘해 주어 그 답례로 사겠으니 부담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환대를 받는 데에 기분이 좋고 즐거운 맘에 다음날은 내가 한잔 사겠다고 했더니, 나를 생각해서인지 그 친구는 흔쾌히 대답해 주었다.
그 다음날 내가 쏴다. 그 친구 역시 모처럼 외국에서 자기를 찾아온 나를 즐거운 마음으로 친구같이 대해 주었고, 나는 어제 접대 받은 걸 갚을 기회가 있어 마음이 매우 홀가분하였다.
헤어지기 전날 마지막 밤이었다. 그 날 역시 그 친구는 오늘은 마지막이니까 자기 와이프와 함께 엊그제 갔던 술집에 같이 가서 간단히 한잔하고 오자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체력적으로 술도 못하지만 독한 보드카를 며칠동안 계속 마시는데 평소 같으면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국에 와서 이렇게 멎진 친구와 함께 그것도 예쁜 그의 와이프와 같이 술을 한 잔 한다는 것이 기억에 남을 만한 즐거운 추억이라는 생각이 들어 웬일인지 나의 체력이 그날따라 술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두세 시간이 흐른 후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야 하는 일만 남게 되었다. 연속 3일밤을 지내준 그 친구에게 우정의 표시로 포옹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다음에 한국에 올때는 반듯이 와이프와 같이 오는 약속을 우리식으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내가 계산서를 들고 보이를 불러 계산을 하려 하니까 갑자기 그 친구가 계산서를 뺐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날이라서 자기가 계산을 하려는가 했는데, 자기와 자기부인이 마신 술값을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이가 나에게 다가와 42달러인데 33달러를 공제한 9달러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마신 술값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놀랬다 그리고 곧바로 눈치를 채고 10달러를 보이에게 줄 수 밖에 없었으며, 1달러는 팁이라 하여 보이를 보냈다. 그 친구는 계면쩍어 하는 나에게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탁자위에 이런 단어를 쓰는 것이었다. “ DUTCH PAY" 나는 손바닥을 치면서 더치페이하고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나라는 추렴과 뿜빠이란 말이 있는데 생각하면서...., 나는 이렇게 하여 DUTCH PAY를 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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